반짝이는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이길보라 감독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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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90%가 들을 수 있는 청인(비장애인)이다. 그러나 이들은 소리로 하는 말보다 손으로 하는 말을 먼저 배운다. 그리고 부모님의 문화인 농문화와 세상의 문화인 청인 문화를 동시에 접하며 자라난다. 두 세상의 경계 어디쯤에서, 때로는 두 문화를 이어주기도 하며 각자의 빛깔로 살아가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 있다. 바로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이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어느 날 만난 이길보라 감독. 그녀는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로서 자신과 부모님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이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얻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촉망받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코다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 이어 같은 제목의 책을 썼는데, 이 제목을 통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제목을 그렇게 지었던 이유는, 이 반짝이는 세계로 사람들을 환영하고 싶어서였어요. 환영하고 환대한다는 그 포인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렇게 아름답고 예쁜 것이 있는데, 손을 사용하고 수화를 사용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있는데 너도 한 번 건너와 볼래? 그런 환대를 하고 싶었어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그만큼 아름다우니까. 그래서 제목을 반짝이는 박수소리로 지었던 거예요. 영화 중간중간에 반짝이는 이미지라든지 손이 계속 나오는 이유도 그런 의미예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부모님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감독님의 이야기기도 하잖아요. 사람들한테 받아들여질 때는 주로 부모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코다의 이야기가 소외된다는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처음에 기획을 할 때 ‘부모님의 이야기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이 다큐멘터리가 의미가 있는 이유는 비장애인이 청각장애인을 찍은 게 아니라 코다가 경험한 농인의 세계, 농문화를 소개하는 거잖아요. 항상 어디든 가이드가 필요하잖아요. 모든 이야기에는 항상 스토리텔러가 존재하는데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잘 기능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는 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두 가지 문화를 동시에 경험했고 항상 중간에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갑자기 건너가는 건 너무 힘들지만 나를 통해서 건너가는 것은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의 이야기도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고. 영화에서 코다가 뭔지 직접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아도, 농부모 아래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시선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코다는 농인세계랑 청인세계를 모두 접한 특별한 존재이잖아요. 코다의 특별함, 코다만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두 가지 문화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그게 가장 특별한 지점인 것 같아요.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그 두 가지 문화가 단순히 음성언어에 기반한 두 가지 문화가 아니라 시각언어, 즉 수화언어 중심의 농문화와 음성언어 중심의 청인 문화라는 거예요. 너무 다른 두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

코다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도 언어화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시각언어와 음성언어 사이에 있는 거라서, 음성언어로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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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수화와 음성언어는 굉장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쉽게 언어화할 수 없으니까, 그 분야는 개척 또는 연구되어야 할, 말해져야 할 이야기가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아직 다룬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문화적으로든 학술적으로든 풀어야 될 게 많아요.

 

두 세계가 너무 달라서 겪는 이질감이나 충돌은 없나요?

두 세계가 서로 공존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인간이 이기적인 게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짓밟는 방식으로 살아남으려고 하잖아요.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왔고 특히 한국사회가 그래왔다고 생각해요. 살아남기 위해서 장애인들 무시하고, 성소수자 무시하고, 여성 무시하고.

우리가 다 동등했다면 저는 두 가지 문화가 달라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지금은 한쪽 문화가 무시 받고 있어요. 농인들은 청인 무시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한쪽이 한쪽을 너무 무시하니까 그걸 설명하려고 항상 노력했던 것 같아요. ‘농문화와 청문화는 같아요. 무시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엄마아빠는 불쌍하거나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에요.’ 이런 점을 늘 설명해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들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로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괜찮다’라는 말이요. 그런데 그 괜찮다는 말은 사실은 우리 모두한테 필요한 말이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결국 코다의 문제는 코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이슈와 연결되어 있고 다양성에 대한 문제니까요. 이 다양성에 대해서 정부가 지원 제대로 해주고 서포트 제대로 해주고 다 똑같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아서 우리나라에 되게 많은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오지랖도 똑같은 것 같아요. 알아서 잘 사는데 괜히 훈수 두고, 잘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결국 코다 문제도 다양성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문제인데, 그래서 괜찮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응. 너는 코다야. 그래서 괜찮아. 너 말고도 세상에는 되게 많은 코다들이 있어.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제가 학교를 그만뒀으니까 학교를 그만두었거나 그만두고 싶어 하는 친구들한테도 괜찮다고 얘기를 해주고 싶은 거예요. 제가 영화를 하니까 이렇게 어떤 일정한 수입이 없어도 괜찮아, 죽지는 않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어.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냥 내버려두면 잘 사는데 신경 쓰고 언제 결혼해, 언제 대학가, 언제 졸업해, 언제 취직해. 그게 모두를 괴롭게 하는 것 같아요.

 

코다가 괜찮게살려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으면 좋을까요?

지원사업이나 지원체계가 만들어져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근본적으로는 결국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고 우리가 정말 문화적으로 다양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불이익이나 사회적 편견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코다에게 돈을 주고 코다 지원사업 하고 코다 교육하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코다로서의 자존감을 가졌는데, 사회에 나가면 사람들이 계속 차별해요 장애인 이상하게 쳐다보고. 그럼 결국 똑같은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들이 하는 운동이 ‘코다 인권 보장하라, 보장하라’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저희가 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그쪽에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문화적 다양성. 그래서 코다 문제를 코다뿐만 아니라 농인도 알아야 되고 청인도 알아야 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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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은 코다로서의 자부심이 있나요?

네, 있어요. 제가 코다라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하는 일이랑 연결되고, 제가 여러 가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고 그걸 가지고 여러 작업들을 할 수가 있어서 저는 코다 프라이드가 있어요.

저는 최소한 그런 (다양성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 무식하지 않거든요. 근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무식한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무식한 사람들을 비난하지는 않아요. 그냥 잘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로 글로. 왜냐하면 알려주면 사람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거든요. 다만 한국사회가 너무 획일화된 것만 강요해서 기존에는 몰랐던 거죠.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 비장애인, 유색인종, 한국사람, 다 같이 어렸을 때부터 섞여 살았더라면 우리는 사실 장애에 대한 교육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내 친구가, 옆에 사는 친구들이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농인이라든가 코다라든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셨는데,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다른 장르에 비해 소수자들의 삶을 더 잘 보여주어서인가요?

다큐멘터리를 택한 이유는 제가 논픽션의 영역을 좋아해서예요. 어렸을 때부터 소설보다는 에세이나 수필을 더 좋아했고, 영화를 볼 때도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더 좋아했어요. 그래서 논픽션의 영역에 있는 것들에 항상 관심이 있었고 논픽션이 더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한국은 지금 픽션보다 논픽션이 더 비현실적이잖아요.(웃음)

다큐멘터리를 항상 하고 싶었는데, 엄마아빠가 시각언어를 쓰는 사람이니까 영상이라는 장르가 장점이 큰 것 같아요. 그냥 말하는 사람들을 찍는 것보다 엄마아빠가 수화를 막 하면서 눈썹 움직이고 이런 걸 찍으면 화면이 훨씬 더 재미있거든요. 엄마아빠의 문화를 책으로 쓸 때랑 영상으로 만들 때랑은 되게 큰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같은 제목을 가진 책과 영화가 있지만 두 개가 되게 다르단 말이에요. 두 가지가 갖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만드는 작품은 베트남전을 소재로 했는데, 그런 소재를 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할머니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월남전 참전 군인이었는데 할머니랑 이혼하고 싶어서 이혼비를 벌러 월남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시작되었어요. 왜 할머니랑 이혼하고 싶어서 돈을 벌러 베트남에 다녀왔지? 베트남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하는데 정말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벌었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제가 만난 베트남이 있으니까 두 가지가 충돌한 거죠. 왜 우리 할아버지는 돈을 벌러 베트남에 갔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근데 할아버지는 아이러니하게 고엽제로 돌아가셨거든요. 암에 걸려서. 괴롭게 돌아가셨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할아버지는 계속 자신의 참전을 되게 자랑스러워하고, 프라이드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프라이드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는 프라이드인 거예요. 일종의 자아분열인 거죠. 그래서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충돌하는 지점을 다루고 있어요.

 

그 작품이 끝난 후에 더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들은 어떤 거에요? 앞으로도 소외된 사람들이나 소수자 이야기들을 하고 싶으신가요?

네, 다음번에는 페미니즘 작업 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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