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아름다운 무대 위의 몸, 장애 공연예술가 앨리스 셰퍼드를 만나다

image_pdfimage_print

역사적으로 무대는 ‘완벽한 몸’만이 설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여성은 무대에 설 수 없어 남성들이 여성을 연기했고,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연극 무대에서 흑인 역할은 얼굴을 검게 칠한 백인들이 연기했다. 장애를 가진 몸이 무대 위에 주인공으로 설 수 있게 된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다’고 간주되었던 무대 위의 몸들은 관객의 시선과 만나 여러 가지 흥미로운 역동을 만들어낸다.

 지난 4일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의 일환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앨리스 셰퍼드(Alice Sheppard)의 퍼포먼스 공연 ‘끼어든 경사로’가 야외 무대에 올랐다. 앨리스 셰퍼드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미국의 흑인 장애여성 예술가이다. 키티 룬 인피니트 댄스씨어터(Kitty Lunn of Infinite Dance Theater)에서 발레와 현대무용을 공부하였고, 무용단체인 AXIS에서 활동을 시작해 2012년 이후 프리랜서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와 여러 정체성 사이의 교차 지점에 대해 고민하는 모임인 ‘장애/여성/정체성’의 구성원들이 앨리스 셰퍼드가 무대에 오르기 전 서울시립미술관 연습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미국의 장애 공연예술가 '앨리스 셰퍼드(Alice Shepperd)'는 무대 위에서 장애인, 흑인,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장애 공연예술가 ‘앨리스 셰퍼드(Alice Sheppard)’는 무대 위에서 장애인, 흑인,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진 촬영 : 귱 기자)

Q. 앨리스 당신의 공연의 미학과 정체성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제 예술이 사회적, 문화적 규범과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장애인이고, 여성이고, 또 흑인이에요. 움직임을 통해 인종, 젠더, 장애가 교차하는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세 개의 영역이 만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여성으로의 정체성은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되나요? 만약 당신이 남성이라면 당신의 공연은 다른 모습일까요?

– 저는 공연을 할 때 원피스를 입어요. 올바른 말은 아니지만 원피스가 여성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보시는 대로 저는 근육이 많고 남성적인 면도 있는데, 남성적인 면을 가진 여자도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싶어요. 흑인으로 가지는 정체성도 마찬가지고요.

 Q. 한국에서는 장애여성에 대한 담론들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장애와 인종 사이에 나타나는 교차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어서 굉장히 흥미롭게 들리네요.

–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과 유색인종이 아닌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시선은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컨대 백인이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사고를 당했는지 등의 이유를 물어보지만, 흑인 장애인은 으레 총에 맞았거나 마약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려요. 내가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슈퍼에 가면 도둑질할 가능성이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지만, 장애인이 되고 나서는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죠.

저는 흑인으로서 갖는 정체성도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흑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저의 이 근육들도 제 무대를 만드는 하나의 도구가 됩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 ‘끼어든 경사로’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특히 이번 공연은 야외에서 진행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이 공연은 경사로라는 건축물을 이용한 공연이에요. 나에게 장애를 주는 건 내 몸이 아니라 건축물이거든요. 경사로를 만든다고 해서 장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경사로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만들어졌고, 아름답지도 않고,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온전히 건축물을 즐길수도 없지요. 그래서 저는 경사로를 정해진 목적이 아닌 미적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해요.

저는 보통 실내에서 공연을 만들지만 이번에는 인위적인 실내 무대가 아닌 야외를 무대로 만들어서 공연합니다. 야외에서 공연을 하며 관객과 더 가까이 호흡하고 싶고요. 또 관객들과 가까이 만나 그들이 가진 일상적인 선입견이나 사회적인 측면들을 좀 더 가까운 위치에서 드러내고 싶습니다.

_mg_0027

_mg_9999

앨리스 셰퍼드의 공연 '끼어든 경사로'는 기능적 건축물을 '미적 장치'로 사용하고자 하는 앨리스의 미학이 담겨져 있는 공연이었다.
앨리스 셰퍼드의 공연 ‘끼어든 경사로’는 기능적 구조물을 ‘미적 장치’로 사용하고자 하는 앨리스의 미학이 담겨져 있는 공연이었다. (사진 촬영 : 귱 기자)

짧은 만남이 끝난 후 야외 무대에서 만난 앨리스의 공연은 그녀의 공연 미학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미술관 건물에서 야외 무대로 나오는 ‘경사로’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홀로 내려오는 등장부터 강렬하였다. 총 3부로 나뉘어진 공연에서 앨리스는 무대 위를 구르고, 뛰고, 날아서 자유로움을 표현하였다. 휠체어는 앨리스의 몸 그 자체였고, 무대 안의 경사로는 더 이상 ‘기능적 구조물’로 보이지 않았다. 앨리스는 ‘완벽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몸의 속성들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해 보였고, 모든 정체성들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글쓴이

세계 최고의 뚠뚠이를 꿈꾸며.

Leave a Reply

Be the First to Comment!

avatar

wpDisc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