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과 휠체어 장애인이 함께 떠난 대만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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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낯선 경험이다. 낯선 풍경, 사방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 이해하기 힘든 낯선 언어들. 우리는 이방인이 되기 위하여 낯선 공간을 방문한다. 사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경험도 이와 유사하다. 비장애인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른 언어를 말하고 있다고 느낄 때, 경험을 누구와도 오롯이 공유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일상이었던 세계를 낯설게 느낀다.

농인과 휠체어 장애인,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지고 삼십여년간 살아온 두 사람이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은 두 사람에게 아주 낯선 경험이었다. 우리는 낯선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는 경험에서 더 나아가 각자의 시선을 통해 서로의 장애를 이해하고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느끼고 바라보았을까?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있었을까?

베이터우 온천 박물관. 창문을 통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베이터우 온천 박물관. 창문을 통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영민의 이야기 1

우리는 석달 전부터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여행 직전에 일정이 변경되는 바람에 호텔을 급하게 다시 예약해야 했다. 타이페이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푸중(Fuzhong) 역의 한 호텔을 검색하고, 이메일로 휠체어 접근성을 문의하였다. 호텔은 장애인 호실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고 넓은 화장실을 포함하여 장애인 호실의 사진도 직접 찍어 보내주었다. 고민할 여지도 없이 예약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여행 첫 날 호텔에 도착해 호실을 확인하니 방이 아주 좁았다. 트윈 침대를 구석으로 밀어넣어서 겨우 휠체어로 이동할 통로를 마련하였지만, 통로에 걸린 벽걸이 TV 때문에 이동시에 어깨가 부딪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조식을 먹을 수 있는 7층 식당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 휠체어로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꽤 날카롭게 내 권리를 주장하는 편이다. 권리를 침해당하거나 차별을 받았을 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상황을 시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150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에 여행을 와서 ‘숙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커다란 화장실에 만족하며 저녁 일정 전 깜빡 잠이 들었다.

효진의 이야기 1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내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필담으로만 제한된다. 필담은 더 정확한 소통이 가능하고 필담내역을 여행 기록으로도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상대의 인내와 배려에 기대야 한다는 제약도 따른다. 이번 여행에서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영어회화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영민과 함께 동행한 덕분이었다.

그녀는 짧은 영어로도 빠른 일처리가 가능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져도 마치 모두 알아듣는 것처럼 매우 유능한 모습이라 멋지다는 생각도 종종 했다. 그러나 알고보니 ‘대충 이런 뜻이었겠지 뭐’ 라며 때려 맞추는 식이었다고 한다. 어쩐지 이 모습이 한국에서 사람들과 얘기할 때의 내 모습과 매우 겹쳐보여서 순간 격한 동질감을 느꼈다.

소통에 있어 내가 나설 일은 거의 없었지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첫 날 영민이 기진맥진해 뻗어있는 동안 호텔 카운터에서 필담을 가장 길게 주고받았다. 방 공간을 확보하고 일단 짐을 풀었지만, 영민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벽걸이 TV를 피해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고 가는 것을 보고 이대로는 매우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면 몰라도 무려 3박인데 최소한 ‘방 안의 이동성’은 확보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카운터로 가서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방이 매우 불편한데 혹시 방을 바꿔줄 수는 없나. 바꿔줄 수 없다면 최소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 벽걸이TV 때문에 휠체어가 화장실로 가는 길이 매우 불편하니 TV를 치워 달라. 지금 동행인이 자고 있으니, 깬 후에 처리해 줄 수 있는가?” 호텔 측에서는 이미 입실을 했기 때문에 방은 바꿔줄 수 없지만, 다른 요청사항은 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영민이 잠에서 깬 후 호텔 직원은 우리 방에서 벽걸이TV를 제거하느라 낑낑댔는데, 그녀는 옆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갸웃거리며 ‘이게 되나?’라는 물음표를 얼굴에 떡하니 띄워놓고 있었다. 드디어 제거에 성공하고, 아까보다는 편하게 지나다니는 것을 보고 어찌나 뿌듯하던지!

호텔에 이처럼 불편사항을 제기하고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내게 낯설지 않다. 장애인실을 이용할 일은 없지만 방이 너무 춥다거나, 시트가 좀 더러우니 갈아달라는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필담을 통해 풀어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숙소에서의 불편함을 시정해달라는 요청은 고객의 당연한 권리이고, 숙소에서의 안락함을 위해 나는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는 불편함 쯤은 얼마든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맛이 없는 조식만큼은 참을 수 없다!)

그동안 효진이 여행지에서 필담으로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동안 효진이 여행지에서 필담으로 나누었던 이야기들.

영민의 이야기 2

여행지에서 우리가 길을 찾는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구글 지도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같았지만(구글 지도가 없을 때 어떻게 여행했을까?) 지도를 이용하는 방법은 상이했다. 나는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파악한 후 움직이면서 방향을 유추하는 반면, 효진은 주위의 건물과 표지판을 보고 가야할 방향에 대해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으면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방향을 정한 후에도 지나가는 사람이나 안내 데스크에 계속 길을 물으며 정확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효진을 따라가면 길을 잃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이토록 강박적인 그녀의 확인이 청각장애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길을 찾기 위해 잠시 떨어져 있다가 효진을 만나야 할 때 그녀를 부를 수 없으므로 전속력으로 달려서 그녀의 팔을 두드렸다. 생경하지만 불편한 경험은 아니었다. 다만 홍마오청(紅毛成)에 가기 위하여 만원 버스를 탔을 때 서로 떨어진 좌석에 앉았는데, 앞뒤좌우로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목적지에서 하차를 할 수 없었다. 효진과 소통을 할 수 없어 하마터면 내리지 못할 뻔 했다. 그 때 처음으로 서로 무선 진동벨을 가지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타이페이 여행의 필수 코스 중정기념당. 장제스의 서거시 나이인 89개의 계단이 놓여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로, 효진은 계단으로 이동했다.
타이페이 여행의 필수 코스 중정기념당. 장제스의 서거시 나이인 89개의 계단이 놓여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로, 효진은 계단으로 이동했다.

 

효진의 이야기 2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길을 물어본 적이 거의 없다. 길을 워낙 잘 찾는 편이고, 일단은 움직이면서 방향을 파악하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은 내가 최후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영민과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는 이러한 내 방식이 크게 바뀔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바꾼 것도 아니었다. 여행이 끝난 이후에야 지나왔던 길을 떠올리며 내가 이동 동선에 크게 신경쓰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여행 내내 계속 느꼈던 것은 휠체어는 이동 동선이 정말 길다는 것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장애인용 출입구 등을 찾아 더 멀리 빙빙 돌아가야 했다. 지하철에서 다른 노선으로 환승할 때에도 열차 양끝에 있는 휠체어석에서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왔다 가길 반복했는데, 이러한 비효율적인 동선들은 우리의 체력과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대만은 휠체어가 다니기에는 비교적 길이 좋은 편이지만 가끔 급한 경사와 완만하지만 긴 경사도 있어서 그 때마다 내가 휠체어를 밀곤 했다. 그 구간 외의 평지에서 영민은 내 손을 거의 빌리지 않고 스스로 다니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한편으론 언니가 많이 힘들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무의식중에 종종 했던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의 팔 근육량이 3kg쯤은 늘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 그런데 영민은 분명 나와 똑같은 지도를 보고 있음이 분명한데 왜 정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인가…?

효진은 나를 독특한 프레임으로 바라보았다.
효진은 나를 독특한 프레임으로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 시선, 세계관, 새로운 여행 경험

나의 여행 경험은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장애인 화장실의 유무 말고도 많은 요소들에 좌우된다. 예를 들면 길바닥의 질감 같은 것들이다. 돌길은 아닌지, 타일이 울퉁불퉁하지는 않은지, ‘미학적으로’ 배열된 타일이 불규칙적이라 휠체어로 다니기 불편하지는 않은지도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 경사로가 있는 경우에도 경사로의 길이와 각도가 적당한지 살펴본다. 엘리베이터에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많이 탑승해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와 같은 ‘시민 의식’도 접근성의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것들을 고려해 이동을 해야하니 많은 경우 나는 내 주위의 풍경에 둔감한 편이다. 내 시선은 휠체어 바퀴 앞의 울퉁불퉁한 타일,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내 앞에 손을 잡고 서 있는 고등학생 커플을 향해 있다.

효진은 엘리베이터에서 엘리베이터 고장 원인을 명시해두는 빨간 버튼을 찾아내며 신기해했고, 지하철 역 표지판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점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대만에 두 번째 방문하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효진이 찍은 사진을 보니 내 머리 위에 날아가던 새떼, 용산사 처마 끝에 달려있던 동물 모양의 풍경(風磬) 같은 것들이 찍혀 있었다. 반면 내 사진은 좀 더 구체적인 사물을 찍은 것들이 많았다. 가끔 내가 효진의 사진을 찍을 때는 (그녀의 큰 키 때문에) 내 시선에서 올려다본 사진이 많았는데 효진은 그런 시선이 매우 흥미롭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늘 효진의 허리께에서 그녀를 올려다본다.
나는 늘 효진의 허리께에서 그녀를 올려다본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장애로 인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갖게 된다. 물론 모든 농인, 모든 휠체어 장애인이 우리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어떤 성격적 특성을 가지는지에 따라 ‘장애’로 인한 세계관은 다르게 발현될 것이다. 여행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경험이지만, 서로 다른 감각에 의존해 살아온 두 사람이 떠난 여행은 그 독특한 감각을 구성해온 과거의 경험들, 살아온 방식에 대해서도 상상하게 만들어 더욱 즐겁다.

나는 효진을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더 잘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가 연어 요리를 좋아하고, 가방 속에 여섯 가지의 전자제품을 가지고 다니며, 생각보다 대범하고 용감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그 이상이다.

글쓴이

세계 최고의 뚠뚠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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