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가에게 ‘공간’을 묻다 : 잠실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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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특히 시각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이란 단순히 작품을 만들어내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작품의 아이디어를 내고, 작품을 생산하고, 때로 전시하여 대중과 교류하고 평론가들의 날카로운 비평과 마주하는 것. 모두 작가의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일상에서도 ‘공간’의 제약과 맞서 싸우는 장애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은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장애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은 예술 활동의 장일 뿐만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장이기도 하다.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는 국내 최초의 장애예술가 전용 창작레지던시로 2011년 개관하였다. 지난 해까지 7기 총 53명의 장애예술가를 지원해왔으며 올해 3월, 12명의 작가들이 입주하였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단순히 장애예술가들에게 물리적 공간을 대여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전문가 평론, 예술 교육 등 다양한 장애예술가 지원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5일 잠실종합운동장 내에 위치한 잠실창작스튜디오를 방문하였다.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넓은 입구, 넉넉한 장애인 화장실과 주차공간 등, 잠실창작스튜디오는 그 외관부터 장애친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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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내에 위치하고 있다.

스튜디오내로 입장하자 식사와 티타임이 가능한 카페테리아와 운영 사무실이 있었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낮게 설계된 싱크대가 눈에 띄었다. 허락을 받고 입주작가 전용 출입구를 통해 작업실 복도에 들어섰다. 하얀 복도 유리벽에는 보드마카로 여러 가지 공지와 일정들이 적혀 있었다. 이 벽은 청각장애인의 필담 장소로 쓰인다고 하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작가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각 방에는 초인종이 달려 있었고 청각장애인 작가들은 초인종 불빛으로 방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실창작스튜디오 내부. 작가들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과 휠체어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낮은 싱크대가 놓여져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 내부. 작가들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과 휠체어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낮은 싱크대가 놓여져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장애예술가들에게 편안한 작업환경을 가진 곳이었다. 또한 ㄱ자 통로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열두 개의 작업실은 물리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실창작스튜디오를 둘러본 후 지난 해 7기에 이어 2년째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는 8기 김명아 작가를 만나 잠실창작스튜디오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물었다.

Q.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입구에 들어오며 작가님의 작품 ‘자기방어’를 보았습니다. 특히 소통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작가님의 청각장애의 경험이 작품에 반영이 된 것인가요? 작가님의 장애는 작품에 어떻게 녹아 있나요?

A. 저는 청각장애를 가진 작가로서 대학원 시절부터 내가 이 작품을 왜 하는가를 고민하며 작업했는데, 그 당시에 나온 작업들을 보면 숨기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장애 정체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작품에서 장애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장애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장애 때문에 단절된 느낌, 비장애인들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느낌을 같이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장애로 인해 단절된 느낌이 동기가 되었지만, 장애 때문에 의사소통의 문제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고 비장애인들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네요.

Q. 장애에 대한 고민이 작품에 녹아 있지만, 장애예술가로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계시지는 않는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장애’ 예술가 혹은 장애 ‘예술가’. 김명아 작가님은 어디에 방점을 두고 계신지요?

김명아 작가의 조형작품 ‘자기방어’, 스튜디오 외벽에 전시되어 있다.
김명아 작가의 조형작품 ‘자기방어’, 스튜디오 외벽에 전시되어 있다.

A.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프로페셔널한 미술 작가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어려서부터 프로페셔널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고 계속 전시들을 보며 감각을 훈련시켜 왔구요. 작년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아트서울 2015에 참가해서 MANIF에 참가하신 선배 작가들에게 인정도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예술가로서 활동하다가 잠실창작스튜디오에 들어와서 장애예술계를 접하게 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 요즘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장애가 있든 없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Q. 그러면 잠실창작스튜디오라는 ‘공간’에 대해서 질문드릴게요. 다른 창작 레지던시에 가본적은 없지만 잠실창작스튜디오는 다른 공간과 비교할 때 굉장히 장애친화적으로 느껴져요. 작가님에게, 그리고 장애예술가들에게 잠실창작스튜디오란 어떤 공간인가요?

A. 저는 신체적으로 제약이 덜하지만,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각장애입니다. 만약 다른 창작공간에 갔더라면 의사소통에서 소외감을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잠실 스튜디오에서는 청각장애인이 항상 많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더 많이 신경을 써주고 있는 편이에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장애 접근성이나 장애 인식이 굉장히 열악한 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잠실창작스튜디오는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환경이 좋은 축에 속합니다. 휠체어 작가가 바깥에서 작업실을 구하려면 이동에 굉장히 제약이 많을 텐데 잠실스튜디오는 사용료가 무료이기도 하고 휠체어가 다니기에 굉장히 좋은 작업실이라 휠체어 사용자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여건이라 생각됩니다.

작업실 복도. 청각장애인 작가들은 작업실 복도 유리벽에서 필담으로 소통할 수 있다.
작업실 복도. 청각장애인 작가들은 작업실 복도 유리벽에서 필담으로 소통할 수 있다.

Q. 물리적으로도 굉장히 편한 공간이지만, 열두 명의 작가가 서로 교류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곳인 것 같습니다. 잠실창작스튜디오 내에 여러 가지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어요. 작가님의 작업에 도움이 된 프로그램들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스튜디오 내 ‘콩갤러리’. 입주작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스튜디오 내 ‘콩갤러리’. 입주작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A. 같은 처지의 장애예술가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비슷한 입장에서 공감도 많이 하고 장애를 주제로 작품을 할 때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것이 이 곳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상설 전시공간이 있어서 항상 작가의 작품을 걸어놓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주류 미술계가 원하는 작품의 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이 있어요. 현대미술강좌와 평론가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어서 이 부분을 적절히 만족시켜 주고 있습니다.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장애예술가들에게 도예, 판화, 현대미술이론 강좌 교육을 시켜주고 있어서 원래 작품 활동을 하던 영역 외에도 다른 영역으로도 작품 활동을 확장할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 제공해주고 있고요. 평론가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어서 작가 6명 신청을 받아서 평론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평론가의 글을 받았는데, 평론가의 동의를 받고 향후 전시 때나 공모전 지원 등에 글을 실을 수 있습니다. 또한 평론가와 2회 미팅을 하면서 작가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적절한 조언들도 해주는 부분이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이후에 이곳에 입주할 작가들을 위해서 앞으로 잠실창작스튜디오에 더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A. 청각장애 작가의 경우에는 의사소통이나 정보의 전달에서 가장 취약하기 때문에 회의 시에 소외되지 않도록 실시간 문자통역이나 수화통역 시스템이 잘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잠실창작스튜디오의 경우에는 운영진들도 회의 때마다 문자통역을 해주고 청각장애인 작가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할 때 SNS 단체 채팅방을 이용하라고 권하고 있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운영진 인력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장애인 활동 지원 예산을 따로 책정해서 외주인력을 활용해서 의사소통을 따로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예술가로 김명아 작가의 경험은 작품에도 녹아있었지만, 공간에 대한 고민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잠실창작스튜디오 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장애인 접근성을 요청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김명아 작가의 공간에 대한 고민이 장애예술가의 작업 공간을 더욱 장애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기를, 그리고 더 많은 예술가, 대중과 ‘소통’하는 아름다운 작품 세계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쓴이

세계 최고의 뚠뚠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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